서울대생협 노동자들의 파업 앞에선 대학생협 학생활동가의 참회록
前 경희대생협 학생이사 / 現 대학생협연합회 학생활동가네트워크 교육팀 박주석
대학에 입학한 15년도 대학생협 프로젝트 참가자로 시작해서 이사까지 실무자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많은 학생들을 만나왔다. 그렇게 5년째 활동 중이며, 내년에도 지속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대학생협에 머무른 학생이지만 그동안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경희대생협 학생이사로 2년을 활동하면서 내가 있던 회의에서 의결된 사항들은 잉여금을 학교로 넘기거나(2017), 생협 매장을 학교의 압박으로 외부 기업에 넘겨주거나(2017, 2018),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는 정책(2018)뿐이었다. 국회에서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노동유연화 제도가 통과됨에는 반대하면서도 내 눈 앞에서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는 것은 막지 못 했다. 아니,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못 했다.
경희대생협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고 평가되는 곳이다. 학생이사가 절반을 차지하며, 총회 대의원 절반 이상을 학생이 차지한다. 그렇다고 총학생회와 같은 학생자치기구 대표자가 당연직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조차 탄력근로제에 반대하는 이사가 반대를 하지 못 했다. 왜였을까. 내가 그 당시 반대하지 못 한 이유는 2가지였다.
첫째, 경희대생협은 내가 이사회에 들어온 이후 매년 적자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심지어 계절학기 기간일지라도 방학에는 학교에 학생들이 많이 남지 않고,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조식과 석식까지 요구하는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시간 외 수당을 낮출 수 있는 탄력근로제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경희대생협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희대생협은 사무직과 현장직 급여의 차이가 크지 않다. 이는 전반적으로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원래는 최저임금 인상의 1~2년을 앞서갔지만, 최저임금이 30% 올랐고 이를 미리 대비하지 못 한 경희대생협은 이제 최저임금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인건비 비중이 가장 큰 식당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이사회에서 적자상황을 개선하라는 요구에 사무국에서는 감봉을 감수하며 전직원 탄력근로제 적용을 대안으로 들고 왔다.
둘째, 이사회에는 대학 본부의 교직원들이 당연직으로 들어온다. 새로 맺은 약정서에 의하면 대학은 임원(이사·감사)를 추천할 수 있다. 첫해는 교원이사를 두 번째 해는 직원이사를 추천하였다. 교직원 이사는 대학과 생협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대학의 입장을 우선시한다. 혹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경험이 많고 사전에 별도로 논의를 진행하여 결정권을 쥐고 있다. 학생이사가 회의에 들어가서 이미 정해져 있는 흐름을 뒤집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7년 경희대생협은 경희대에 복지환경개선기금 명목으로 10억을 냈다. 그리고 이후 순이익이 아닌 매출액을 기준으로 기금을 내고 있다. 그래서 적자를 면치 못 하고 있다. 10억을 복지환경개선기금으로 내게 된 배경은 2008년까지 올라가야 한다.
2008년에는 대학의 구성원 복지에 대한 정책이 변경되면서 처음으로 생협이 아닌 외부기업(셀란)이 학내에서 영업을 개시했다(호관대, 도서관, 경영대). 경희대 졸업생이 창업한 기업인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이를 생협은 거절하지 못 했다. 이후 재단의 자회사(KMC)를 통해 학내 사업을 개시했고 (의대커피점, 삼의원기숙사 식당 및 커피점, 푸른솔커피점 등) 이로 인해 생협은 영향력을 잃었다. ‘생협은 현재 운영하는 사업장만 운영하고 신규 사업은 재단자회사를 통해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이에 그 당시 운영진(이사장, 사무국)은 신규 건설되는 매장(한의대, 간호이과대)을 생협이 아닌 재단 자회사 등이 운영하게 되면 조합의 사업 규모 축소 및 운영상 적자, 직원의 감축이 예상된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상황으로 운영 시 몇 년 못가서 운영의 어려움에 직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보유하고 있던 10억을 신축 건물 매장 조성 재원으로 사용하며 대학은 운영권을 보장하고 유통(MRO 등)을 생협과 함께 확대한다는 조건으로 10억을 전출하였다.
10억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다양한 방식의 개선을 위해 경영에 책임이 있는 이사회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책임하게 잉여금을 그저 쌓아올리기만 할 뿐, 그 누구도 대안을 내지 않았다. 만약 그 돈을 임금 인상에 썼더라면, 노동조건 환경개선에 썼다면, 인력을 확충하는데 썼더라면, 학생에게 필요한 사업을 확장했더라면 어땠을까. 이사회의 무책임함으로 쌓아올린 10억을 학교의 탐욕에 넘겼다.
하지만 위의 배경이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 한 점에 대해 변명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막기 위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학생이사들끼리라도 똘똘 모여 회의하거나 하지도 않았고, 현장의 노동들과 이점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았다. 경희대생협 안에서는 현장의 노동자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려고 가장 노력한 학생이라고 자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류한 목적은 학생주체성과 학생 필요충족, 즉 복지사업을 위함이었지 노동환경 개선이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탄력근로제 도입을 의결한 이사회가 가장 부끄러운 순간 중 하나다.
이런 경희대생협에서 내가 겪은 부끄러움은 연합회 활동을 하는 내 앞에 놓인 서울대생협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서 다시 떠올랐다. 서울대생협은 현재 연합회의 회원조합이 아니다. 교류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울대생협 학생이사를 맡았던 학생들과의 교류로 문제의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고, 기사나 성명을 통해 전달되는 소식은 가슴 아팠다.
현재 연합회는 서울대생협의 2014년도, 2017년도 총회자료집을 갖고 있다. 이외의 자료집은 열람할 수 없다. 총회 자료집을 보면 어떤 방식으로 운영을 했는지가 대략적으로 드러난다. 17년도 자료집을 통해 이 사태의 원인을 일부 밝혀보고자 한다.
우선 이사회 구성이다. 이사회는 최고의결기구인 총회에서 의결된 안건을 통해 운영에 대한 제반을 논의하고 집행한다. 서울대생협은 당연직으로 이사장과 부이사장, 그리고 이사 1명이 선출된다. 이사장은 총장실 소속 교육부총장이며 부이사장은 학생처 소속 학생처장, 이사는 학생부처장이었다. 학생처 소속 직원이 이사로 들어오는 경우는 꽤나 흔한데, 이는 대학본부에서 학생 복지사업에 대한 관리가 학생처의 영역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선출직으로는 교수 5명, 직원 2명, 서울대노동조합에서 1명, 학생 4명, 대학원생 2명이 들어온다. 이사회에서 학교의 입김과 무관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인원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대의원 또한 교수와 대학직원이 각각 25명, 학부생이 30명, 대학원생이 20명, 생협직원이 10명으로 학생과 대학원생의 비율이 높지 않다. 그에 반해 출자자, 즉 대학생협의 주체인 조합원 수는 학생이 4763명으로 80%에 다다른다.
직원의 경우 본부사업장과 지사업장으로 나뉘어있는데, 본부사업장의 경우 270명 중 200명이 식당의 직원이다. 18곳의 식당에 2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것이다. 이 중 7곳의 식당이 직영이며, 11곳은 위탁 운영하고 있었다. 카페의 경우, 31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직영 5곳, 위탁 11곳 총 16곳이었다. 본부사업장 사무실과 지사업장의 직원, 즉 사무직은 정규직 비율이 비정규직(무기직, 계약직)에 비해 압도적(86%)이지만, 카페·식당·문구 직원은 정규직 비율이 더 낮다(35.8%)는 점이다.
2016년도 당기순이익은 1억4천만원 정도다. 하지만 이는 대학 내 기여 내역 70억이 넘는 비용을 제외한 비용임을 주목해야 한다. 대학 내 기여에는 조합원 장학금, 조합원 할인, 구성원 할인 등 협동조합으로서 잉여금 환원 사업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발전기금 납부와 같이 단순히 학교 기부 형식으로 쓰인 비용도 있다. 심지어 이 발전기금은 단일 항목으로 10억을 차지했다. 이러한 운영에도 불구하고 교직원 감사가 진행한 감사보고서는 ‘재무상태와 경영성과를 적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 외에는 감사 의견이 없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신경민 의원은 "생협에서 임대료와 발전기금을 많이 받고 시설투자비용도 받는데, 기본적인 (휴게시설 등이) 게 안 돼 있고 기본급도 낮다"며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대 총장은 “생협은 간접적으로 학교에서 연간 10억 이상 지원하고 있다.”며 답변했다. 16년도 시설투자비용은 7억 2천만원이다. 기부금은 22억 6500만원이었다. 대학 본부 입장에서 대학생협은 10억을 투자해서 40억을 뜯어가는 4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투자처다. 게다가 투자의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적자가 나면 학생의 복지에 많은 투자를 했다고 표현하면 되고, 최저임금이 올라도 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된다.
생협 매장 운영은 공동 소유로 운영되어 일반 기업에 비해 민주적이다. 하지만 학교는 주요 재정을 임대료에서 찾고자 하고, 높은 임대료는 곧 높은 물가로, 높은 물가는 매장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생활비로 부과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생협은 대학생업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육공동체의 실현 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재단이 주도권을 쥔 학교 본부로부터 독립적인 운영이 불가능하고, 학생조합원과 현장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하청업체일 뿐이다. 그리고 하청업체로 전락한 대학생협은 착취의 대상이 되며, 이에 속한 구성원은 탄압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대생협 노동자들의 파업을 전체 대학생협과 대학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일은 서울대생협이 처음만이 아니다. 작년 여름 경북대생협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경북대생협 노동자들의 파업에 언론은 조명하지 않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경북대생협 파업 이후, 생협 영역 안에서는 학생의 복지를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지금까지 대학생협에 대해 방만해왔고 책임을 다하지 못 했던 구성원 모두는 반성해야 한다. 왜 학생이사로 참여하여 경영진이었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학생들이 사측과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모순이 일어나는가? 여기서 사측과 경영진은 누구인가? 왜 학생들은 ‘생협은’이라 표현하며 생협을 타자화하는가? 그동안 학생은 주체가 아니었다.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고객이었고, 혹은 학교의 이미지를 위한 시혜의 대상이었다. 결코 운영의 주체는 아니었다.
학생이 노동자와 함께 연대하며 운영의 주체로 당당히 서기위해선 당연하게 당연직은 사라져야 한다. 학교는 수익의 대상이 아닌, 공동체성과 민주성의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 대학생협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무국은 계속해서 조합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고민을 이어나갈 학생활동가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지지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교수와 직원은 생협의 입장보다 대학 본부 혹은 재단의 입장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재단과 본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이 주도권을 쥐는 것은 결코 공공성에 기여할 수 없다. 이들이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는 학생은 재정확보의 대상으로 착취당하고, ‘미성숙’한 존재으로서 억압받는다. 노동자는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 하며,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다. 억압받는 계층으로서 학생과 노동자는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연대를 통해 대학생협은 대학생활 전반과 관련한 경제조직으로서 대안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