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변화를 꿈꾸는 대학생협‘학생활동가’이야기
대학의 변화를 꿈꾸는 대학생협‘학생활동가’이야기
대학생협연합회 이사장 김진아
나는 지난 5년의 활동을 통해 대학생협이라는 조직을 경험했다. 나에게 대학생협은 대학생활의 전부였던 학생자치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하게 해준 조직이다. 나의 경험과 고민을 끝내고 이제는 대학생협에서의 활동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대학생협을 떠나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동안 나의 고민을 남기고자 한다.
대학 속의 학생
고등학생까지 나의 생활은 누군가 정해준 규율에 의해 움직이고, 만들어진 체계에 순응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랬던 나의 생활은 대학에 오면서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처음 만난 선배들이‘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라고 하며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대학 운영에 참여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 대학 운영에 우리의 필요를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랬다. 학생들은 주어진 체계에 순응하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누군가 정해준 생활을 했던 내가 스스로 주체로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생회 집행부 활동을 하게 되었다. 집행부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주체가 될 수 있는‘학생자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학생들이 직접 우리의 필요를 공론화하여 목소리를 모으고, 이 목소리를 학교 본부에 전달하여 실현되게 하는 것이 ‘학생자치’라고 생각했고, 이런 활동이 멋있어서 온갖 일을 스스로 도맡아서 하는 열혈 신입생이 되기를 자처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학의 많은 부분은 학생들이 아닌 교수, 직원들을 중심으로 고민되고 결정되었다. 학생들은 언제나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심지어 학생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들도 그들에 의해서만 논의되었다. 대학 내에 대형마트가 입점한다고 했을 때에도, 교내 식당에 학생들의 출입을 제한할 때도 결정과정에 어디에도 학생들은 참여할 수 없었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대학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대학 본부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운영에 참여를 보장받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 싸워야만 했다. 그 때마다 대학 본부의 사람들은 ‘학생들은 공부에나 집중할 것이지 어른들의 일에는 신경을 끄라’고 했다. 이미 교수, 직원들은 학생들을 의사결정에 있어 성숙하지 못한 단위로 규정했다.
대학은 교육기관이자 교육 공동체다. 그렇다면 공동체 속에서 대학교육의 당사자가 되는 이들이 모두 대학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대학의 운영에서 항상 배제되고, 결국에는 싸워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을까. 이런 고민을 이어가며 학생회 집행부 활동을 한지 4년째 되는 해에 나는 단과대학의 학생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나는 생협이라는 곳에 ‘당연직’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당연직이라기에 생협이 학교에서 운영하는 부서라고 인식했다.
생협의 학생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그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학교 본부와의 회의처럼 회의의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또한 생협의 사업이 학교 본부의 상황에 의해 하는 수 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생협은 당시 학생들의 주거비를 지원하는 생활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학교의 장학금 정책이 변경되어 생활비 장학금 전액을 학교에 납부하고 학교가 결정한 방식에 의해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제도였지만 학교의 부서이기 때문에 학교가 직접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는 그런 결정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생협을 학교의 부서 정도로만 생각하고 임원 활동을 했다. 그 누구도 생협이 어떤 곳인지, 임원은 이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생협 임원 활동의 마지막은 감사활동이었다. 감사활동은 연말에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감사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문서를 검토하면서 나는 생협이 독립법인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동안 의무적으로 참여했던 총회, 이사회라는 회의체가 왜 운영되었는지 활동의 마지막에 알게 되었다. 생협이 ‘학생을 위한’조직이 아니라 ‘학생들에 의한’조직이라는 것을 활동을 다 마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본 가능성, 대안으로서의 생협
대학생협은 대학 본부와 독립된 조직이라 대학 본부의 이해관계가 아닌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야 하는 곳이었다. 대학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대학생협의 조합원이 될 수 있었고, 조합원이 된 이들은 조합의 주인으로서 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 대학생협은 학교의 시설을 통해 학생들의 생활 복지를 실현하는 조직이고, 그런 조직에서 조합원이 되면 학생들은 우리의 생활을 ‘학생자치’를 통해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대학생협의 구조가 신기했고, 어쩌면 내가 그동안 학생회 집행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고민했던 ‘학생자치’를 보다 잘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대학생활을 결정하고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의 결정을 실현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생협연합회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합회에서 학생이사로 활동할 것을 제안 받았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내고 싶어서 연합회에서 임원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고, 그 해 연합회 총회에서 선출되어 이사가 되었다. 연합회 이사는 1년에 2~3회 이사회에 참석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내가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 마침 연합회에서 학생상근으로 활동할 것을 제안 받았다. 그렇게 나는 학생상근이자 학생이사가 되었고, 사무실에 계속 출근하는 상근 활동가가 되면서 연합회와 대학생협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대학생협에 대해 공부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대학 내의 여러 문제들이 생각났다. 특히 나는 대학에서 활동하면서 대학상업화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학생들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대학의 모든 결정이 ‘돈’ 때문에 하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본부는 돈이 없는 것을 대학의 가장 큰 위기라고 했다. 그래서 등록금도 올려야하고, 학교 시설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도 하고, 기부금이나 지원금 등도 많이 받아내서 대학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위기의 대학을 구하는 일이라고 했다.
위기의 대학을 구하는 일은 대부분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냈고, 학생들을 위한 고민은 없었다. 등록금을 올리는 일도, 학교 시설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는 것도 그 대상이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기부금은 애교심을 과시하는 방법으로만 사용되었는데 학교 발전을 위해 건물을 짓는다고 했다. 총동문회에서는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캠페인’(실제 이름이 정말 이렇다.)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교에 건물 지을 돈이 없어 민자기숙사를 운영하며 학생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고, 공부할 공간이 없어 학교를 떠도는데 말이다. 지원금은 주로 정부가 정책 순응도에 따라 점수를 매겨 억 단위로 지원하는 방식이었는데, 학생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럴듯한 정책성과를 대학을 통해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마찰이 많았다.
나는 이중에서도 대학생협이 학생들의 생활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는 수단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대학이 시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 내의 시설을 학생들에게 필요한 사업체로 운영하고 거기서 발생한 수익은 다시 우리의 생활을 위해 사용한다는 대학생협의 원리는 대학상업화의 흐름 속에서 피해 받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결정함으로써 대학 내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주도성을 회복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대학생협
나는 대학생협이 대학 안에서 잃어버린 학생 주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조직이라 믿는다. 대학 안에서 학생주도성이 회복된다면 학생에게 생기는 부당한 일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힘을 통해 우리가 대학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생협은 학생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기 위해 학생위원회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조직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연합회 학생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상근으로 활동하면서 연합회 학생위원들과 대학생협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생위원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느낀 것은 현재 대학생협에서는 학생조합원 주도성이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숭실대생협에서 활동할 때 느꼈던 것처럼 다른 학생위원들도 생협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누구도 학생조합원의 권리를 이야기 해주지 않았고, 대학생협의 모든 운영은 어떤 구체적 정황 설명도 없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어른’들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 동의만 하면 되었다. 학생위원들은 본인들이 대학생협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학생협에서 활동하는 학생위원들도 대학생협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대학생협이라는 조직의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학생위원들과 ‘우리가 바라는 대학생협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학생을 위한’다는 대학생협이 실제로 학생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생협의 운영의 방향성을 제안하고자 했다.
대학생협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생협이 학내 공간을 독점하고 있다.’, ‘대학생협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설문의 결과로 많은 조합들이 위기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그리고 설문의 결과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원칙을 실현하는 것만이 ‘학생들에게 필요한’대학생협을 만드는 일이며, 학생조합원들이 주도적으로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여 대학생협의 학생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협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해 총회에서 ‘우리가 바라는 대학생협’의 모습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의 프로젝트는 한낱 인쇄물에 지나지 않았다. 신선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학생위원들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학생조합원들에 의한 운영’이 조합 운영이 안정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그날 다시 한 번 대학생협에서도 학생들은 조합의 발전적인 운영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서 인정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날 총회에서 나는 대학생협연합회 이사장 후보로 추천되었다. 이사장 후보로 추천되었지만 대학생협은 대안이 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많이 지치기도 했고, 더 이상 대학이라는 공간에 애정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후보 출마를 거절하려 했다. 그 때 한 이사가 ‘이런 중요한 자리는 학생이 아닌 기성세대가 해야 한다.’고 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 내가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영영 대학생협에서‘중요한 자리’를 맡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이사장 후보로 출마를 하기로 하고,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다.
대학과 생협에서 학생들은 의사결정에 있어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되어 있다. 이사장이 되고 나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학생이 과연 뭘 할 수 있겠어’였다. 이사장 임기가 시작된 1월 1일 그날의 감정을 생생히 기억한다. 새로운 시작이지만 내가 그동안의 편견을 깨고 학생이라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두려워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행동하는 이사장이 되고자 다짐했다.
1월 2일부터 연합회 사무실에 매일 출근했다. 대학생협을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조직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인수인계를 시작으로 법규집, 연합회에서 작성된 모든 문서 그리고 연합회의 구조와 회원조합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고민들을 다 알고자 했다.
그 해 회원조합의 총회는 시간이 되는 대로 모두 내가 가겠다고 했다. 회원조합에 방문해서 해당 조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조합원들이 가진 고민들을 알고 연합회 차원에서 해결할 방안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회원조합에 방문했을 때도 내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시간을 내어 주지도 않았다. 그저 ‘학생이 이사장이라고? 대단하네. 고생해요.’할 뿐이었다. 나의 요청에 응해준건 언제나 학생들이었다. 총회에 방문하면서 당일 선출된 학생이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대학생협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행동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생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얼만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학생협에서 학생이 이사장 되고 임원이 되는 것은 우리 조직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을 위한’조직에서 학생들이 ‘직접’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조직의 운영을 총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조직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학생이 그런 것들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버렸다. 심지어 몇 사람들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허수아비 이사장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편견들에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협이라는 조직이 가진 힘을 통해 대학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대학생협이 무너진 대학 공동체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생협의 존재 가치를 알리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 조직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자생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 유관 단체와의 협력 관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발제를 하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났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으로서, 그리고 대학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활동했다.
나에게 대학생협은 ‘적당히’가 안 되는 조직이다. 활동을 하면서 온 마음을 쏟아 힘들어 할 상황들이 많았고, 한 사람이 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활동량을 소화해 내면서 몸이 많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고 적당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변화는 대학생인 나에게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했지만, 전국 대학생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특히 나의 활동은 ‘학생조합원’들의 주도성을 회복하는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학생들이 해야 진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학생들을 만나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 우리가 모여서 대학의 변화를 만들어보자고. 참 감사하게도 함께 하겠다고 해준 친구들이 많았다.
연합회 7기가 끝나던 그 해에 나는 이사장으로서의 1년의 활동을 더 결심했다. 연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연임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조언을 구했던 그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학생활동이 하고 싶은 것이 라면 이사장 말고 다른 역할을 주겠다.’고 했다. 1년의 활동 이후에도 우리 조직은 여전히 ‘학생활동’은 이사장의 역할이 아니며, 이사장이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버렸다. 8기 총회에서 나는 대의원들에게 이야기 했다. 학생이라 경영이나 사업을 모른다고 판단하지 말아달라고, 생협은 학생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한 해 더 활동해서 무너진 학생조합원 주도성을 회복하고야 말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었던 것은
2년의 이사장 활동을 하면서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대학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대학생협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었다. 이 활동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조합원 주도성의 회복이다. 그중에서도 대학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동기와 힘을 가진, 대학생들의 주도성을 회복해야 했다.
학생조합원들이 운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 운영에 대해 충분히 알고, 우리가 가진 권리를 잘 활용해야 한다. 나는 대학생협의 학생조합원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우리의 권리와 역할을 설정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조합원들의 활동기반이 필요했다. 학생조합원의 활동기반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학생위원회라는 조직을 운영함으로써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위원회는 사무국 부서에서 운영하는 서포터즈의 역할이 아니라 이사회 상설기구로서 위상을 가지고, 이사회에서 정책결정을 할 때에 학생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학생위원회를 통한 학생조합원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우리의 생활과 고민을 기반으로 정책과 사업을 생산하고 이를 토대로 조합의 실천 사항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학생위원회의 활동은 홍보에만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대학생협을 통해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외부 기업이 장악해버린 기숙사를 생협을 통해 대학 내에서 우리가 살아갈 공간을 직접 운영하자고 요구할 수 있다. 또 생협의 잉여금 환원 방식을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장학금 정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학교에 학생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방안들을 고민할 수도 있다. 그동안 대학생활에서 포기해왔던 많은 권리들을 생협을 통해 만들어갈 수 있다.
학생위원회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사업을 생산해 냈다면 이사회에서는 생산된 것들을 조직적 차원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집행 해야 한다. 이사회 구성원 중에서도 특히 학생이사들은 학생조합원들의 대표로서 그들의 제안사항들을 조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모색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 감사는 조직 차원에서 학생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안하고, 실제로 그들의 고민을 담아 운영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활동가들과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그리고 각자 역할에 대해 고민했던 것들을 토대로 우리 나름의 조직체계를 구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실행력이었다.
조직적인 차원에서 학생들의 주장이 조합 운영에 반영되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학생조합원들의 활동이 중요하다. 정해진 횟수만큼 회의에 가서 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넘어 실제로 학생조합원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사업을 생산하고 실현해 나가면서 우리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실제로 이런 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학생활동가들이 스스로 연대해야 한다. 각자 가진 직책에 의해 분리되어 활동할 것이 아니라 ‘학생조합원들의 필요 실현’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큰 운동으로서 각자의 활동을 인지하고, 가진 역할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런 관계들을 구상하고 학생들이 연대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조합의 학생위원, 임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했다.
연합회 학생활동의 힘
우리가 진짜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활동에 지속성을 담보해야 했다. 체계를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활동이 개별 조합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학생위원과 학생임원들이 서로 만나야 한다. 같은 역할과 고민을 가진 이들이 만나 대학생협에 대해 고민하면 우리 조직의 가치 담론이 더욱 풍성해진다. 그리고 그 담론을 기반으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변화를 생각해 내고, 이 변화는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연대의 힘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연대체가 필요하다. 나는 회원조합의 연대 조직으로 설립된 연합회가 이런 역할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2년 동안 가장 중점적인 활동으로 ‘조직화’활동을 했다. 조직화 활동은 연합회에서 전국 대학생협의 학생조합원들을 설득하고 모아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리고 활동가들이 모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학생위원들은 기존의 학생위원회를 통해, 학생임원들은 학생임원네트워크를 통해 연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앞서 고민했던 것처럼 학생위원들은 기존 서포터즈 역할을 벗어나 정책을 생산하는 주체로서, 학생임원들은 생산된 정책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함께 대학생협에 대한 고민을 키워나가고자 했다.
조직화 활동을 통해 학생조합원들이 모이면 이들이 함께 대학생협의 가치 담론을 형성해 나가고자 하는 활동이 ‘교육’활동이다.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교육 서비스가 아니라, 서로가 조합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본인이 느낀 대학생협을 공유하며 그 속에서 대학생협이 지향해야 할 가치들을 이야기 하고자 했다. 많은 학생활동가들이 교육 활동을 통해 대학생협에서의 활동 의지를 다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조직화와 교육활동을 기반으로 학생활동가들이 연합회를 통해 모이면, 우리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낼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모여서 대학생협을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활동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연합회에서의 고민을 기반으로 각자 조합으로 돌아가 실천 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지치고 외롭지 않도록 연대했다.
처음이라 막막하고 어려워하는 활동가들이 많았지만 연대의 힘으로 개별 조합에서의 활동 원동력을 얻고 우리의 주장이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루는 조합 이사회를 앞두고 이사회를 준비하는 학생위원들과 이사들의 회의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이사회에서 학생위원들이 대학본부와의 독립적인 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생협의 정책을 제안하고 싶은데, 이사들과 어떻게 해야 할지 작전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밤새 회의를 했다. 우리의 고민을 주장하기 위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는 찝찝하게 끝났다고 했다. 상처받는 말들도 많았다고 했다. 내심 활동을 포기하려나 싶었는데, 연락이 와서는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학생활동가들의 의지로 정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을 했다. 우리가 스스로 대학생협을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각자가 지치지 않고 우리의 고민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더 많아 져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연합회 차원에서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합회를 통해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늘어나고, 서로 의지하며 같이 변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그 변화가 실체화 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연합회를 통해 학생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연합회 내에도 학생조합원들의 활동을 보장하는 체계가 필요했다. 기존의 학생상근 체계는 연합회 사무국 팀의 사업으로 운영되었고, 학생활동가는 ‘관리’의 대상이었다. 이 구조로는 온전히 학생 자치를 실현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주도성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자생적인 조직 체계가 필요했다. 자생적인 운영을 위해 활동을 체계화하고 함께하는 활동가들을 늘렸다. 학생상근은 2명으로 확대하고, 학생위원회와 학생임원네트워크에는 학생 실무단을 구성하고, 연합회 주요 사안 별 학생프로젝트팀을 운영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활동은 사무국이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업 계획일 뿐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어야만 하는 학생활동은 그 중심이 학생에게 있지 않다. 학생은‘연대’의 ‘주체’이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의 활동이 네트워크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고 그 조직적 위상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학생사무국 체계를 제안하고자 한다. 학생들의 핵심 목표로서‘조직화,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가치, 개선, 연대’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활동하고자 한다. 그간 고생한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학생상근은 독립성을 보장받게 되었고, 더 많은 학생조합원들과 자생적으로 대학생협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구조를 만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기존의 편견들과 싸워야 했고, 회원조합의 반발도 있었다. ‘연합회 이사장이 뭔데 학생조합원들을 직접 만나냐.’,‘연합회 다녀오더니 애들이 시끄러워졌다.’실제 회원조합의 실무자들이 나에게 한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는다. 그간의 학생활동가들과 대학생협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이 더 이상 상처로 다가오지 않고,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하던 이들에게 아픈 존재가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2년 동안 이사장 활동을 하면서 한 것은 나의 고민을 나누는 것이었다. 학생조합원으로서 우리의 권리를 알리고, 설득하여 함께 하는 사람들을 모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함께 했다.
대학생협의 변화를 꿈꾸며
나는 여전히 학생조합원 주도성 회복을 통해 대학의 건강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조직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2년의 경험을 통해 학생조합원들이 대학생협을 통해 충분히 그런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생들을 성숙하지 못한 존재로서 규정하며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해왔던 어제의 대학생협과 싸워 앞으로는 대학생협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로서 그 중심을 이루었으면 한다. 우리의 대학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순응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자. 우리의 생활을 스스로 결정을 할 힘을 우리는 가지고 있고 그 결정이 우리 생활, 그리고 대학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학생조합원들이 주체로서 이사장, 이사, 감사, 학생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나이 중심의 권력 구조에서 온갖 편견을 감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가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학생조합원들이 그들이 고민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조직이 되었을 때 비로소 대학생협이 대학 내에서 교육적 목적으로서 운영되는 조직임이 인정되어 정당성을 얻을 것이고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학생조합원들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활동가들을 아프게 하는 일이 다시는 이 조직에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의 학생활동가 분들에게
대학생협이라는 곳에서 학생주도성 회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쉴틈 없이 함께 달려준 연합회 모든 활동가 그리고 회원조합의 활동가 분들에게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나는 확신한다. 지치지 않고 함께 달려준 덕분에 대학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말이다. 그리고 올해의 우리들의 고민이 앞으로의 학생활동을 이끌어나갈 활동가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대학생협을 통해 대학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고민하고 주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학교 본부와의 관계 속에서 풀어나갈 문제들이 있다면 학교 내의 학생자치기구와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포기하고 지내왔던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보장하기 위해서 대학생협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대학생협을 통해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 설령 우리의 고민이 무모한 것으로 치부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30년 전 대학 내 독립법인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자 했던 것도 당시에는 무모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변화는 언제나 그런 파격적이고 무모한 고민과 행동으로부터 시작했다.
늘 이야기하지만 학생활동에 실패는 없다. 우리 모두 대학생협을 통해 더 나은 대학생활을 기대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다. 그 꿈들을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주변의 친구들과 나누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계획했던 일을 하지 못했다고,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자. 우리의 진심 어린 그 고민이 언젠가는 조직 안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학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스스로 생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생협이라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활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매번 유행어로 밀고 있다고 농담처럼 한말이지만, 이 문장은 3년을 바친 나의 활동에 원동력이 되었다.
“학생들의 주도적인 대학생협 운영으로 대학의 변화는 시작됩니다.”